어젯밤에 갑자기 생각나 미소지었던 그 시절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한다.
시작은 선풍기였다.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아주 오래된 선풍기
원래 파란색이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가 집에 새선풍기가 있는데 안쓴다고 오빠집에 보내주셨다
꺼내어 보니 새것이 절대 아닌 비주얼 ??? ㅋㅋㅋㅋㅋㅋㅋㅋ
알고 보니 이 선풍기는 부산에서 오빠가 쓰다가 원주에서 내가 대학생활을 할때 썼던 그 선풍기였다.
최소 15년 넘었음 ㅋㅋㅋㅋㅋㅋ
엄마는 쓰지 않은 선풍기가 그대로 있어서 새것인줄 아셨나보더라 ㅋㅋㅋㅋㅋㅋ
이 선풍기는 부산에 있다가 원주에 갔다가 다시 부산에 갔다가 다시 청주로 왔다
역마살 있는 선풍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풀이를 해서 오래 사나봄 ㅋㅋㅋㅋㅋㅋㅋ)
멀쩡하니 버릴수도 없고 오빠는 또 쓰기로 했나보다 (정확히는 모름)
어쨌든 이 선풍기를 보니, 또 지금 선풍기를 쓰는 계절 여름이 되니
원주에서 저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버텼던 때가 기억이 났다.
낮에 선풍기 얘길 듣고 그날 밤 퇴근하고 남자친구와 통화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때 이야기를 술술했다
'가난했지만 참 행복했던 때' 라고
나는 그 때를 그렇게 기억한다.
돈이 없어서 쌈장에 밥 비벼먹고 간장에 밥 비벼먹고 했던 시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릿고개 시절 아님 2000년대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학을 들어가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생활했던 그 때.
1학년때는 기숙사 생활을 했고 2학년때는 아마도 친구와 자취하다가
2학년 2학기 인가, 3학년때 인가 어쨌든 그맘때 부터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진짜 그야말로 내 몸하나 누울 정도의 자취방에서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시원 만한 크기 였던 것 같은데 나름 화장실도 있었고 싱크대도 있었지만
진짜 크기가 아기자기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학때는 집에 내려왔으니 1년에 총 8개월 정도 지냈던 곳인가 싶은데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1년에 100만원인가 했던 곳이다 (지역은 시골이었음 주소지가 면,리 ㅎㅎㅎ)
지금 물가로는 말도 안되는 가격인데 그때도 거기가 아주 많이 저렴했던 곳이라 다른 곳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선택했던 곳이다
1층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주인 댁이 사시고 2층은 고시원처럼 된 형태로 독립된 방이 나란히 붙어있는 형태.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불편한 시설에 어떻게 보면 위험하기도 했던 그 곳을
나는 참 태평하게 행복하게 살았었구나 싶다 ㅎㅎ
어제 통화하면서 하나둘 떠올랐는데 화장실에 세면대가 없었다 ㅋㅋㅋㅋㅋ
세탁기도 없어서 속옷과 수건은 손빨래를 했고 (지금 생각하니 세상에 손빨래를 했구나 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학교 근처라 빨래방이 많이 있어서 옷은 거기에 맡겼음
냉장고는 제일 작은 크기, 냉동실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는 그런 형태 ㅋㅋㅋㅋㅋㅋ
가스렌지도 없어서 휴대용 가스버너로 생활했다 (부탄가스 한번씩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침대랑 책상이 용케 있었고 (침대 크기는 큰 성인 남자는 많이 불편할 사이즈, 내가 키가 작아서 나에게는 적당했음 ㅎㅎㅎ)
그리고 선풍기 보니 생각났는데 방에 에어컨이 없는데 너무 더워서 (저 선풍기 별로 안시원했음)
수건 적셔서 어깨랑 다리에 올리고 선풍기 틀어놓고 그렇게 버텼음 ㅋㅋㅋㅋㅋㅋㅋㅋ
부산에서만 살다가 강원도 가니 여름에 너무 덥고 겨울에 너무 추워서 진짜 놀랬던 기억이 난다
방학때 집에 돌아와서 다행이지 아마 계속 거기있었으면 더위먹고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진짜 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와 그런 곳에서 어떻게 그렇게 행복하게 지냈지?' 라는 생각이 드는 시설이었다
근데 난 참 그때 행복했다 정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돈이 행복과 그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에게서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그런 경험이 되는 시절.
나는 그때 진짜 '나'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된 시절이다.
가족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혼자서만 생활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아 내 인생이구나, 내 인생은 이런 거구나,
앞으로 내가 스스로 살아갈 나의 인생에 대해 처음으로 그려보고 느껴보던 시기.
나는 그때도 외로움은 잘 모르던 아이였기에 ,
자아탐구에 대해 집중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졸업할 때가 다가오면서 나는 취업과 결혼보다는 나의 일, 나의 인생에 대한 큰 열망이 생겨났다.
그때 아마 느꼈었다.
나는 좀 다른 걸 원하는 구나.
어느순간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도서관과 자취방만 오고가며 혼자만의 대학생활을 채워갔다.
그때 책도 내 인생에서 참 많이 읽었고, 영화도 참 많이 봤고, 라디오도 참 많이 들었고, 일기도 정말 많이 썼다.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을 하기에는 내가 나를 몰랐고
불완전하고 미성숙했던 부분들이 많아 인간관계까지 잘 대처하고 챙길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대신 나는 그보다 먼저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시기였다.
그 시절 지금 나라는 사람의 한 조각 정도는 만들어진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돈이 없었는데 돈을 벌 생각은 못했다.
부모님도 공부에 집중하기를 바라셨고 2학년 전공 들어가서 정신차려서 (ㅋㅋㅋㅋ) 공부는 잘했다.
뭐 친구도 안만나고 술도 안마시니 자아탐구 하며 공부만 했던 시기니까
성적은 잘 나왔던 것 같다.
그때 막연히 내가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서 평범한 길을 가지 않을 것 같은데
그때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고 찬성하셨으면 좋겠어서
대학생활에 열심히 공부하고 신뢰를 얻으려 했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게 나름 통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부모님도 내가 처음으로 타지에 가서 생활하느라 걱정하셨을텐데 (막내이고 딸래미라 ㅎㅎ)
부모님이 없는 곳에서도 무탈하고 성적도 잘 나왔으니까 안심을 하셨던 것 같다.
어려운 형편에도 생활비를 조금씩 보내주셨고 나는 공부를 하며 거기에 맞춰 생활을 했다.
알바까지 해야했으면 그 시절이 훨씬 힘들었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왜 알바할 생각을 못했지?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 부모님께 감사하기도 하다.
덕분에 돈은 없어도 잘 맞춰사는 방법도 나름대로 터득했고 (살아보니 이것도 참 유용함!)
또 가장 중요한 '나'를 일찍 만나 알게된 시기여서.
아껴 생활해야하니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고 그러면서 친구들 약속은 후순위로 많이 밀려났던 것 같다.
그 시절 대학 친구들은 서로의 가정형편을 모르니 자연스럽게 멀어짐을 택했다.
지금의 나라면 적절히 좋은 인간관계도 만들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땐 참 어렸다. 다 가질 수 없는, 지금보다는 많이 부족한 시절이었다.
대학 생활때 이야기가 할게 쓰다보니 너무 많다
블로그라 생각나는대로 마구마구 쓰고 있는데 다시 생각나 재밌다 ㅎㅎㅎ
보통 대학생활 하면 떠오르는 그런 기억들은 나에게는 별로 없지만
나는 나의 공간, 그 작은 방이 그때 당시 솔솔월드 같았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처음으로 가져본 나만의 공간
물론 지금은 별거 아닌 일들이 그때는 큰 고난처럼 느껴져서
일기를 몇 페이지를 채워야 잠이 들수 있었던 그런 수많은 날들도 있었다.
아무에게 말할수 없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스스로 탐구하며
종종 오빠와 통화를 하며 보낸 눈물의 날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 혼자만의 공간을 처음으로 가져보고
나라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인생의 고난도 나혼자만의 공간이 있으면
결국 나를 잃지 않고 나만의 답을 찾을 수 있구나라는 확신을 얻었던
그 어린 날의 값진 깨달음.
그래서 정말 말그대로 가난했지만 마음은 가난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돈없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을 누리며 살았던 시절.
내 경험으로 온전히 남아있기에 너무 소중한 그 시절.
혹시나 하고 찾아봤는데 그 자취방에서 찍은사진이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학교 친구가 놀러와서 찍어준 사진
친구는 침대에 자고 나는 바닥에 자고 그러면 끝인 공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참 행복해 보이는 구나, 나름 귀엽네 ㅎㅎㅎㅎㅎ
저 시절 영상도 짧게 있었던 것 같은데 한번 찾아봐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로 뒤에 코치 가방은 내 친구 거임 ㅋㅋㅋㅋㅋㅋ)
오늘의 글은 이 사진으로 마무리 ㅎㅎㅎㅎㅎㅎ
추억은 아름답고 또 소중하구나 -
나와 지금 나의 소중한 존재들, 그리고 나의 모든 시절인연들이 행복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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